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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칼럼] [기고] 정자교 붕괴 사고, 이대로는 계속될 것이다 N

No.5996472
  • 작성자 이재훈
  • 등록일 : 2023.04.25 15:07
  • 조회수 : 152
[기고] 정자교 붕괴 사고, 이대로는 계속될 것이다 (naver.com) 


정자교 붕괴 사고 후 전국의 지자체는 즉시 노후 교량에 대한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했다. 중앙정부 각 부처도 자료를 작성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시설물이 붕괴되면 늘 그랬듯이 이런 사후 조치가 시행된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유사한 사고가 날 때마다 긴급 안전 점검을 했지만,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여 붕괴를 예방한 사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관련 공직자들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사후 조치의 반복으로는 붕괴 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다.

긴급 안전 점검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이유는 전문성 부족 때문이다. 시설물의 안전 상태를 점검하고 진단하는 일은 설계나 시공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전문가가 아니면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보는 눈이 있어야 문제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조물 안전 진단은 공학박사나 구조기술사 수준으로 전문 지식을 공부하고 실제로 적용한 경험이 많은 전문가의 책임하에 수행되어야 하는 업무이다. 갑자기 짧은 기간에 전국의 수많은 노후 교량을 긴급히 안전 점검하려면, 전문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험이 부족한 인력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마치 긴급히 전국 노인들의 건강 이상을 살펴봐야 하는데 전문 의료인이 부족하니 수련의에게도 진단을 맡기는 꼴이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후 1995년 1월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같은 해 4월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이 설립되었다. 이 공단은 현재 ‘국토안전관리원’으로 개명되었고, 특별법은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으로 확장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 특별법에 따라 민간 유지 관리 업체에 안전 점검을 위탁하여 대행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준 높은 안전 점검을 수행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을 보유한 민간 유지 관리 업체가 극히 드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선진국에서도 교량 붕괴 사고는 발생한다. 2007년 미국 미네소타주 I-35W 고속도로 교량, 2018년 이탈리아 모란디(Morandi) 교량, 2019년 프랑스 미르푸아 쉬르 타른(Mirepoix-sur-Tarn) 교량의 붕괴 등이 그 사례이다. 그러나 사고 후 어떻게 후속조치를 실행하느냐와 평소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선진국과 후진국이 크게 차이가 난다. 국민들이 안전하게 시설물을 이용할 수 있게 하려면 우리 방재 시스템의 골격을 선진국 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려면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주목하여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첫째, 사고 조사의 주체가 다르다. 2007년 미국 I-35W 교량 붕괴 때는 관리 주체인 미네소타주 교통국(Department of Transportation, DOT)이나 연방 고속도로관리국을 두고 있는 연방 교통부에 속하지 않은 별도 조직인 국가운송안전위원회(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가 조사했다. 그 이유는 관련 기관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기관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객관성에 대한 의심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다. 우리나라는 시공 중에 발생하는 붕괴 사고에 대하여는 별도의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용 중인 시설물의 붕괴 사고는 국토교통부의 산하 기관인 국토안전관리원이 조사한다.

둘째, 사고 조사의 기간, 범위, 수준이 다르다. 2017년 평택국제대교 붕괴 사고의 조사 보고서는 5개월 후 완성되었다. 반면에 미국 I-35W 교량 붕괴 사고 조사 보고서는 1년 3개월 후 완성되었으며, 2001년 9·11 테러로 인한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건물 붕괴의 최종 조사 보고서는 2005년에 발간되었다. 이것은 조사의 범위와 수준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I-35W 교량 붕괴 사고 조사 보고서는 구조 설계의 미비점, 설계 때 예상하지 못한 하중 증가, 강재 부식에 의한 저항 성능 감소 등 기술적인 원인 분석뿐만 아니라 또 다른 관점의 원인 분석도 포함되어 있다. 즉, 기술적 문제에 대한 미네소타 교통국과 설계사 사이의 협의와 승인 내용, I-35W 교량의 피로 균열에 대한 미네소타대학의 연구 결과, 안전진단업체의 보고 내용, 미네소타 교통국의 조치 내용 등 설계 이력과 안전 점검 이력, 지적 사항, 후속 조치의 내용을 담음으로써 무엇이 부족했는지 검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였다. 또 안전 점검 매뉴얼의 미비 항목을 적시하는 한편, 연방 고속도로관리국과 교량 설계 기준 관리 기관에 개선 권고 사항을 제시하였다.

셋째, 여론의 형성 과정이 다르다. I-35W 교량의 붕괴 현상만을 보도하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의 의견을 인용하며 붕괴 원인을 추측 보도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던 언론은 조사 내용이 조금씩 알려지자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미네소타주 교통국 엔지니어들이 여러 차례 I-35W 교량의 보수 보강 공사가 시급하다고 보고했음에도 주정부가 이를 행하지 않았다고 보도하였다. 또 교량의 유지 관리 예산을 줄이고 자신의 정책을 집행할 예산을 늘린 주지사의 판단이 붕괴 원인이라며 공학적 판단에 정치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보도하였다. 물론 사망자 13명과 부상자 145명이 발생한 I-35W 교량의 붕괴 사고로 사법 처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외에도 진단 업체의 선정 방법, 입찰 자격 제한, 유지 관리 예산 수준, 담당 공직자의 업무와 교육 및 경험 수준 등 차이점이 많지만, 큰 비용 없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위 세 가지만이라도 빨리 개선한다면 안전 확보의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정자교 붕괴 사고 후 정부와 정치권에서 어떤 사후 대책을 내놓는지 국민이 지켜보아야 한다.